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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寧國寺)는 영동군 천태산(天台山) 아래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시대 초창된 뒤 12세기 경 원각국사 덕소(圓覺國師 德素)에 의해 대규모 불사가 이루어 졌다. 영국사 승탑(寧國寺 僧塔) 등 보물 5점,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와 도지정 문화재 5점 등 다수의 불교유산이 소장되어있다. 소대는 불교의 수륙재, 천도재에서 사용되는 소문(疏文: 부처님 앞이나 명부전 앞에 죽은 이의 죄복을 아뢰는 글) 등을 넣는 불교의식구이다. 영국사 목조소대는 전체적으로 외부는 대좌부, 신부, 두부로 구성되어있으며, 내부에 소문을 고정하는 판목은..
영국사 동종은 조선후기(1761년 제작)의 전형적인 동종양식을 보이는 예이다. 특히 동종의 명문을 통해 조성발원에 대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고 후원자와 장인(이만돌)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충북지역 불사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영국사 동종은 전체적으로 상부가 좁고 하부가 넓은 조선후기 종의 형태를 보인다. 종신(鐘身)에는 2줄의 융기선으로 구획하였다. 천판에는 두 마리의 용으로 용뉴를 표현하였다. 총18자의 범자를 상대에 돌아가면서 배치하였다. 그 아래에는 4개의 연곽과 4위의 보살상이 번갈..
매곡면 노천리는 충주박씨 종중 세거지로 도 유형문화재인 ‘흥학당’과 ‘사로당’이 있으며, 인접마을에 문화재자료인 ‘세천재’가 있어 서당, 사당, 재실을 모두 갖춘 종중의 지역 정착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마을이다. 봉유재는 중종때 안주목사를 지낸 박성량(朴成樑)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632년 건립하였다. 이후 두차례에 걸친 중수 과정을 거쳤으며 2019년에 전체해체 보수하였다. 흥학당 인접한 곳에 건립되어 소종재라 불리다가 봉유재(奉裕齋, 선조를 받들고 후손에 복을 준다는 奉先裕后라는 뜻)라는 현판을 달고 재실, 서당..
영동 덕후재(永同 德厚齋)는 함양여씨(咸陽呂氏) 15세이자 울산공파(蔚山公派) 시조인 중온(仲溫)의 재실로 1769년에 세웠고, 1803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06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주 성씨(移住 姓氏)의 재지(在地)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문화재로 조선후기 가문의 제사를 둘러싸고 맏며느리의 제사권과 후사 지정권을 인정한 문중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고구려 벽화속에 이미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가 모두 출현하고 있어 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에는 악기조성창이라는 독립된 기관을 설치하여 악기를 제작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국악기는 가야금과 거문고가 가장 대표적이고 그 다음으로 아쟁, 대쟁, 호금 등이 주류를 이룬다. 현악기는 울림통을 오동나무로 하고 밑판은 밤나무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장식품의 조각은 대추나무나 흑단, 향나무 등을 많이 이용한다. 오동나무는 음향이 잘 진동하며, 말라도 틈이 생기지 않고 좀이 먹지 않는 것..
1934년 건립 1905년에 개통된 경부선의 보통역으로 문을 연 심천역은 수송량이 많아지면서 복선 공사와 함께 그 위치를 옮기게 되어 1934년에 현재의 역 건물이 신축되었다. ‘一’자형 평면 형태를 하고 있고 대합실 출입구에 박공지붕을 구성하여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철로변 대합실 출입구에 차양 지붕을 덧달아 본채 지붕과 차이를 두어 입체감과 함께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1934년 건립 이 다리는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개근천(愷勤川) 위에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으로, 한국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사건’ 현장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총탄 흔적(○, △ 표시)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1939년 건립 이 시설물은 경부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급수탑이다. 현재 남아 있는 철도 급수탑 중 유일하게 평면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입면 구성은 기단부, 기계실, 물통의 3단 구성으로 다른 급수탑의 구성과 비슷하다. 기계실 내부에는 당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펌프가 있고, 급수탑 외부에는 급수에 필요한 물을 끌어들인 연못 등 급수탑과 관련된 모든 시설물들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1939년 건립 이 시설물은 경부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급..
齋室(一祭齋)의 실제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중수기에 따르면 1445년(세종 27년) 固城南氏 奉事公(諱 世智)이 상촌면 임산리에 복거(卜居)한 후 365년 되던 해인 1809년(순조 9) 중수된 재실이라고 한다. 1919년에는 기와, 서까래, 대들보와 주초를 비롯하여 담장과 중문 등을 중수하고, 1969년에는 번와 및 계단 초석 등을 중수한 것으로 보인다. 재실 앞의 관리사 역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기 어려우나 천정 상량문에 丙子 三月이라고 적혀 있어 1876년에 건립되었거나 이전에 있던 것을 1936년에 중수한 것으로..
이 건물은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흥학당(興學堂) 번택명록(飜宅名錄)과 단양이씨(丹陽李氏) 춘천부사공파보(春川府使公派譜)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마을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1800년대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기와 제작 수법과 기술이 뛰어나고, 툇마루 청판은 고식기법(古式技法)으로 조선시대의 치목기법(治木技法)이 나타나 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아울러 건축 가구법(架構法)이 축조 당시의 목조기술(木造技術)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일부의 변형 즉 반자의 설치, 후면 툇마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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